나의 할아버지는 이북 분이시다.
이 때문인지 우리집 식구들은 냉면과 만두를 굉장히 좋아하는데,
부산에 처음 왔을 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부산의 냉면이라는 '밀면'을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.
사족으로 6.25 때에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본인들의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했지만, 전쟁통에 꿩 고기나 소고기가 있을리 만무하잖는가... 그래서 다른 재료를 가지고 비슷하게 만들어낸 냉면이 밀면이고, 설렁탕이 돼지 국밥이라고 하더라.
아무튼 그 집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문제였는지, 원인은 모르겠지만...
정말 형편없었다.
아니 어떻게 이걸 냉면과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...?
아무튼 그 기억이 10년 가까이 이어졌고 이후로 밀면을 먹은 기억이 한 2번 정도 될거다.
(그마저도 예의상 먹은 것 뿐.)
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. 그리고 바뀔 것 같지 않다..
다만 여기는 좀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집이다.
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와 서면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.
무얼 먹을까 하다가 영광도서 쪽에 자기가 자주 가던 밀면집이 있다며 가자고 했다.
영광도서를 지나 더 가다보면 나오는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서면 번화가에서 거리가 있는 곳임에도 계속해서 손님들이 오고갔다.
우선 사진 한 장.
친구랑 둘이만 가서 막 찍기가 그랬다.
육수는 출입구 옆 정수기 쪽에서 직접 가져다 마실 수 있게 되있었고
전체적인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.
물론 그렇다해도 밀면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일 것이지만.
가격도 5천원으로 요즘 같은 시대에 좋은 한 끼 식사가 되겠다.
번외
부산에 처음 발을 딛은게 벌써 10년이 지났다.
지금도 그랬지만 그때도 돼지국밥 집이 동네에 되게 많았는데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줄곧 잘 드시곤 하셨다. 물론 나는... 미개하게 돼지 끓인 물을 왜 먹냐며 손도 안댔지만.
그러던 어느 날에 급식으로 돼지 국밥이 나왔다.
건더기 없는 깨끗한 국물에 흰 쌀 밥, 그리고 부추 약간이 구성되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,
아마 그게 돼지국밥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모양이다.
얼핏 보면 설렁탕처럼 보이기에 (가끔 설렁탕을 주문하면 돼지국밥처럼 나오는 그런 형편없는 집이 있더라.) 맛있게 잘 먹고 얼마 후에 식단표를 보고 깨달았다.
그 이후로 돼지국밥 애호가(?)가 되었고 대학에 들어와 첫 여름을 맞이했을 때는 형들과 학교 앞 국밥 집에서 소주 한 병을 곁들이기도.. (그리고 수업 들어간건 비밀)
그렇게 2년을 보내고 잠시 집에 돌아왔을 때, 가끔 돼지국밥이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.
얼마전 돌아와 사먹었지만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기는.